예쁜 암컷이 더 강한 수컷을 차지한다.
[잉겔로레 에버펠트 지음-유혹의 역사]
여성해방 운동가들이 브래지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 지른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이다. 화형에 처해진 브래지어의 죄목은 여성을 속박하고 여성의 몸을 남성의 눈요기거리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아 여성들은 실리콘 주머니를 가슴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브래지어를 할 필요가 없도록, 아예 인공 가슴을 신체에 이식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초 실리콘 보형물 부작용이 문제가 되면서 식염수 주머니가 대용으로 등장했다.
가짜 가슴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여성들은 스트로피온이라는 붕대 모양의 장치로 가슴을 받치거나 추켜올렸다. 유럽에서는 나무를 깎아 만든 인공 가슴, 밀랍으로 만든 모조 유방이 새로운 발명품으로 주목 받았다.

여성의 가슴은 권력 투쟁의 현장이다.
20세기의 여성운동가들은 가슴을 강조하는 브래지어가 여성의 예속을 상징한다고 거부했지만, 인류 역사상 더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의 가슴은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장소였을 뿐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협상하는 무기였다.
1741년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에 오른 러시아의 여황제 엘리자베타는 가슴을 절반 이상 노출한 초상화를 금화에 새겨 넣음으로써 자신이 실존하는 권력임을 만천하에 선언했다.
어디 가슴뿐인가? 인류 역사를 통해 여성의 신체는 노출과 변형, 과장을 계속해 왔다. 아름다움과 기괴함은 문화적 차이일 뿐이다. 둥근 접시를 입술에 끼워 넣는 에티오피아 여인과 입술이 도톰해 보이라고 실리콘 주사를 맞은 현대 여성의 근본 동기는 한 가지다. 아름다움을 통한 유혹.
저자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유혹의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독일의 성의학자이며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20세기의 대중문화와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궁중과 귀족 문화에서 발견되는 사례들을 통해 인간 행동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유혹과 생존 경쟁의 양상을 해부한다.
이를 "아름다운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차지하는 데 승리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여성주의 시각에서는 이단일지 몰라도, 동물 생태학의 눈으로 보면 자연의 원리다. 저자는 그곳에서 출발한다.
더 예쁜 암컷이 더 강한 수컷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예쁜' 외모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진다는 데 인간의 특성이 있다. 심지어 가짜로 눈속임을 할 수도 있다. 보톡스나 페이스 리프팅에서 지방 흡입술 같은 성형은 말할 것도 없고, 가짜 속눈썹이나 마스카라, 볼 터치, 향수 같은 일상의 화장술도 유혹을 위한 눈속임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성의 몸에서 유혹의 파워가 가장 큰 곳은 어디일까. 저자는 피부, 즉 맨살을 첫손꼽는다.
나폴레옹 시대 '세기적 사건'으로 꼽혔던 탈리앙 부인의 민소매 튜닉(고대 로마풍의 발목 길이 원피스) 외출이 던진 충격은 요즘의 속옷 패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 허리, 다리, 발, 머리카락과 체취, 향기가 어떻게 유혹의 장치로 사용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아름다워지려는 여성의 노력 뒤에는 '모종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예뻐지려는 노력이 결국 '전략'이며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동물생태학에 기초한 분석이고 현실 파악이다. 하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관점이남성이 권력을 장악한 기존 사회 체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투항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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